몽골에 맞상 끝까지 버틴 흙담, 항파두리 이추룩 남아신디 몰랐수다
지금은 조용한 벌판으로
제주에서 역사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제주4·3사건부터 떠올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제주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도 품고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제주시 애월읍에 자리한 항파두리 항몽 유적이 바로 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고려 후기, 몽골에 끝까지 맞서 싸웠던 삼별초가 마지막 근거지로 삼았던 토성 유적으로 알려져 있어요. 4·3평화공원과는 시대도, 사건의 결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걸 먼저 분명히 짚어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귤이가 이 항파두리라는 곳, 그리고 그 흙담 속에 담긴 저항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드릴게요.
삼별초, 몽골에 맞서 바다 건너 제주까지
삼별초는 고려 후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군사 조직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해 오던 시기, 조정이 몽골과의 강화를 선택하는 흐름 속에서도 삼별초는 이에 따르지 않고 끝까지 항쟁을 이어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도 쪽에 자리를 잡았다가, 그마저 어려워지자 바다를 건너 제주까지 옮겨와 마지막 저항의 거점을 마련했다고 전해지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늘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이미 조정이 항복을 택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싶어서요. 정확히 몇 년에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는 이 글에서 제가 함부로 단정해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고려 후기라는 시대, 그리고 몽골에 맞선 마지막 저항이었다는 큰 흐름만큼은 여러 자료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 항파두리
항파두리라는 이름은 이곳에 삼별초가 쌓았던 토성, 그러니까 흙으로 다져 쌓은 성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로 쌓은 성이 아니라 흙으로 쌓았다는 점이 저는 참 인상 깊더라고요. 지금이야 관광지로, 유적지로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 이 흙담을 쌓아 올렸을 사람들의 손과 시간을 떠올려보면, 이게 단순한 방어 시설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지막까지 버텨보겠다는 마음이 저 흙 한 줌 한 줌에 담겨 있었을 테니까요. 현재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에는 당시 토성의 흔적과 함께, 이곳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기념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월읍이라는 지역 자체가 제주에서도 비교적 조용한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곳에 이런 무게 있는 역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는 게 묘한 대비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흙담 밑에 어떤 마음들이 깔려 이신지 생각허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수다.
— 🍊 귤이4·3평화공원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제주 역사 하면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제주4·3사건을 먼저 떠올리시는데, 항파두리 항몽 유적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 완전히 다른 사건이라는 걸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4·3사건이 20세기 중반의 아픈 역사라면, 항파두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역사입니다. 시대도 다르고, 사건의 배경도 다르고, 남겨진 유적의 성격도 다릅니다. 제주라는 섬 하나에 이렇게 시대를 달리하는 역사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저는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관광지 하나 들르는 걸음이지만, 그 걸음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여행이 조금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조용한 벌판, 그때는 마지막 보루
지금 항파두리를 찾으시면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넓게 트인 벌판과 옛 토성의 흔적, 그리고 차분한 기념 공간을 마주하게 되실 겁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어쩌면 밋밋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근데 이곳이 한때는 몽골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 마지막까지 버티려 했던 사람들의 보루였다는 사실을 알고 걸으시면, 그 조용함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곳일수록 오히려 천천히, 말을 아끼고 걸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화려한 사진 한 장보다, 그 시절 이곳에 서 있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쯤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주 여행에서 오름이나 바다만 보고 가시기엔, 이 섬이 품고 있는 역사의 결이 너무 다양합니다. 항파두리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만큼 담담하게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월읍 쪽으로 여행 동선을 잡으신다면, 잠깐이라도 이곳에 들러 흙담 사이를 걸어보시길 귤이가 조심스럽게 권해드립니다.




귤이의 팁 ·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는 제주시 애월읍에 있어 대중교통보다는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게 편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넓은 벌판을 걷는 코스가 대부분이라 그늘이 많지 않으니, 한여름에 방문하실 계획이라면 햇빛을 가릴 모자나 양산을 챙기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