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만 알암시냐? 마을 지켠 돌탑도 이신 거 몰람시냐
마을의 허한 곳을 지키다
제주에서 마을을 지켜온 돌 이야기라고 하면 다들 돌하르방부터 떠올리실 텐데요, 사실 제주에는 사람 모양으로 다듬어 세운 돌하르방과는 결이 다른 또 하나의 돌 신앙물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방사탑입니다. 돌하르방이 눈코입을 새긴 조각상이라면, 방사탑은 특별한 형상을 새기지 않은 채 그냥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탑 모양의 구조물이에요. 화려하지도, 눈에 띄게 크지도 않아서 여행객들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편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고 전해집니다. 오늘은 귤이가 이 방사탑이 어떤 돌탑인지, 왜 하필 저런 모습으로 쌓아 올려졌는지 하나씩 풀어드릴게요.
액운 막으려 돌 쌓았다, 방사탑이라는 이름
방사탑은 한자로 풀면 막을 방(防)에 삿될 사(邪), 그러니까 사악한 기운을 막는 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름에서부터 이 돌탑이 어떤 역할을 하려고 세워졌는지가 짐작이 가시죠. 제주 사람들은 예로부터 마을에 좋지 않은 기운이 들어오는 방향이 있다고 믿었고, 그 방향에 돌을 쌓아 액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사탑은 돌하르방처럼 마을 입구나 성문 앞을 지키던 수호신이라기보다는, 마을의 풍수를 살펴 허하다고 여겨지는 자리, 그러니까 기운이 새어 나가거나 나쁜 것이 들어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지점에 콕 집어 세운 액막이 구조물에 가깝습니다. 같은 돌로 만든 신앙물이라도 돌하르방과는 세워진 이유도, 자리 잡은 위치도 다른 셈이에요.
돌하르방만 이신 게 아니고 마씀, 마을 허한 자리 막앙 지켜온 돌탑도 이신 거우다.
— 🍊 귤이방사탑이 세워지는 자리는 아무 데나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지형을 살피고, 어느 방향이 허전한지, 어느 쪽에서 나쁜 기운이나 화재, 질병 같은 재앙이 들어올 수 있는지를 함께 의논한 뒤에 그 자리에 돌탑을 쌓아 올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방사탑은 마을 어귀나 바닷가 쪽, 마을 경계가 되는 자리에 세워진 경우가 많고,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지기보다는 두 개가 한 쌍을 이루어 나란히 세워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이 두 탑을 두고 암탑과 수탑으로 구분해 불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지금이야 마을 어귀에 조용히 서 있는 돌무더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는 마을 전체의 안녕을 걸고 정성껏 골라낸 자리였던 셈입니다.




돌무더기 꼭대기에 얹은 마음, 방사탑의 생김새
방사탑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돌하르방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새긴 조각이 아니라, 밭이나 바닷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잡석을 둥글게 또는 네모나게 차곡차곡 쌓아 올려 원통이나 원뿔 모양으로 만든 탑이에요. 높이도 마을마다, 탑마다 제각각이어서 사람 허리춤 정도로 낮은 탑도 있고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탑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특이한 점은 탑을 다 쌓아 올린 뒤 꼭대기에 새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나 나무로 깎은 사람 형상, 또는 기다란 돌기둥 하나를 얹어두는 경우가 많았다는 건데요. 이 꼭대기에 얹힌 형상이 하늘을 오가며 마을을 살피고, 나쁜 기운이 다가오면 먼저 알아채 막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투박하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 하나에도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바람이 켜켜이 쌓여 있었던 셈이죠.
정확한 기원은 물음표, 그래도 마을마다 이어지는 이야기
방사탑이 정확히 언제부터 세워지기 시작했는지는 사실 딱 잘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제주의 독특한 풍수 신앙과 액막이 풍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아 온 것으로 짐작될 뿐, 하나로 딱 떨어지는 유래나 연대를 못 박아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는 게 정확할 것 같아요. 다만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방사탑을 함부로 허물거나 손대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그만큼 방사탑을 마을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로 여겨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확한 연도 하나를 짚어내는 것보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조심스레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자체가 방사탑이 걸어온 세월을 더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돌하르방이 이제는 공항이나 관광지 입구마다 세워져 제주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얼굴 같은 존재가 됐다면, 방사탑은 지금도 여전히 마을 안쪽, 사람들 발길이 잦지 않은 조용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제주 여러 마을에는 지금도 방사탑이 원래 자리를 지키며 남아 있고, 그 가치를 알아본 지역에서는 이를 소중한 민속 자산으로 여기며 보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려한 조형물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지켜온 믿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그 앞을 지날 때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지실 거예요.




GYULI的贴士 · 방사탑은 대부분 마을 안쪽이나 경계 지역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어 정해진 개방 시간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마을 주민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신앙물인 만큼 가까이서 살펴보실 때는 탑에 손을 대거나 돌을 옮기지 않도록 유의해 주시고, 방문 전에는 위치와 접근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