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눈이오름 그 사진, 누게가 찍은 건지 알암시냐? 두모악 강보민 압서
한 사람의 시간이 남아있는 곳
지난번 귤이가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운 능선 이야기를 들려드렸던 거 기억하실까요? 그 능선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오름과 바람이라는 풍경을 평생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고 전해지는 사진작가 한 분의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바로 김영갑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인데요, 그가 남긴 갤러리가 지금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자리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갤러리 이름은 두모악, 한라산을 부르던 옛 이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어요. 오늘은 지난 오름 능선 이야기에 이어서, 그 능선과 바람을 평생 바라보고 찍었다고 전해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폐교 하나가 갤러리가 되기까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원래 삼달초등학교였던 건물과 운동장을 고쳐서 만든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폐교가 되어 오래 방치돼 있던 학교 건물을, 김영갑 작가가 직접 손보고 가꿔서 갤러리로 새로 태어나게 했다고 전해지는데요, 그래서인지 이곳은 흔히 떠올리는 반듯한 전시관보다는 오래된 학교의 정취와 정원이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예전에 운동장이었던 자리에는 지금 나무와 화초, 작은 연못들이 들어서 있다고 전해지고, 교실로 쓰이던 공간은 사진을 거는 전시실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사라져 가던 폐교라는 공간이, 한 사진가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은 곳으로 남게 된 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 출신이 아니라 육지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순간 제주라는 섬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아예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때부터 오름과 들녘, 바람과 안개처럼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일에 오랜 시간을 쏟았다고 전해져요. 특히 오름의 능선과 그 위로 흘러가는 바람,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물드는 억새밭을 즐겨 찍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데, 같은 오름이라도 시간과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사진 속에 붙잡아 두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갤러리 이름을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으로 지은 것도, 제주라는 섬 자체를 향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이야기를 저는 듣게 됐어요.
오름 하나를 놓고도 몇 년이고 같은 자리를 찾아가 셔터를 눌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에게 제주는 그냥 촬영지가 아니라 평생을 걸고 마주한 상대였겠구나 싶었어요.
— 🍊 귤이



몸이 굳어가던 시간에도, 갤러리를 가꾸다
김영갑 작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루게릭병이라는 병을 얻어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 언제 병을 진단받았고 어떤 경과를 거쳤는지까지 제가 여기서 자세히 단정해서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러워요. 다만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갤러리 두모악의 정원과 전시 공간을 손수 돌보는 일을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카메라를 예전처럼 자유롭게 들기 어려워진 뒤에도, 자신이 만든 이 공간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결국 김영갑 작가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가 만든 두모악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흔적은 갤러리 뜰 어딘가에 함께 남아 있다는 이야기로도 전해지는데, 이 부분 역시 제가 정확한 사실관계까지 확인해 드리기는 조심스러운 지점이에요. 다만 분명한 건, 그가 평생 사랑했던 이 공간이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많은 방문객을 맞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점점 자유롭지 못해지는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과 공간 곁을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이, 지금도 이 갤러리 곳곳에 조용히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두모악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두모악 갤러리 안에는 김영갑 작가가 평생에 걸쳐 찍었다고 전해지는 오름과 들녘, 바람이 만들어낸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안개가 낮게 깔린 오름의 능선, 노을 아래 붉게 물든 억새밭,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까지 — 화려한 순간을 포착했다기보다는 같은 자리를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잔잔한 시간이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저는 종종 듣습니다. 지난번 귤이가 소개해 드렸던 용눈이오름의 그 부드러운 능선도, 어쩌면 이런 사진가의 시선을 거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름이라는 풍경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을 통해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는 참 신기하고도 뭉클합니다.
제주 여행을 준비하실 때 두모악은 흔히 '사진 갤러리 하나' 정도로만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곳이 원래 폐교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간을 평생 오름과 바람을 사랑했던 한 사진가가 몸이 점점 굳어가는 순간까지도 손수 가꾸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면, 전시실 하나를 걷는 발걸음도 조금 달라지실 거예요. 화려한 인증샷보다는,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바라본 오름과 바람의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걸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두모악을 찾아,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제주의 바람과 오름을 조용히 마주해 보시길 귤이가 권해드립니다.




귤이의 팁 ·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서귀포시 성산읍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기 휴관일이나 관람 시간이 따로 있을 수 있으니 방문 전에 미리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